/이정랑 중국고전 평론가
그 마을 사람들을 활용하는 간첩술(因間)
손자는 이 책략에 대해 ‘손자병법’ 「용간편」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인간(因間)이란 그 마을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다. ‘인간’은 손자가 말하는 ‘5간’ 중의 하나로, ‘향간(鄕間)’이라고도 한다. ‘인(因)’은 빌린다, 근거한다는 뜻이다.
이 책략은 동향·동창·동료·친척·친구나 포로 등을 간첩으로 삼아 적군의 정보를 염탐하거나 적군을 와해시키는 것이다.
‘진서 晉書’ 「조적전」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조적은 자기 부하를 몹시 아끼고 백성에 대해 어진 정치를 베풀며 현명한 선비는 공경해 마지않았다. 또 관계가 깊지 않은 친구나 비천한 노비에게도 은혜를 베풀고 예의 바르게 대우했다. 그래서 황하 이남의 토지들이 계속 진나라의 소유가 되었다.
강기슭의 작은 성에 사는 일부 집안의 자제들이 호인(胡人) 쪽으로 가서 일했지만, 조적은 결코 그들을 추궁하지 않고 그들을 각기 호와 진에 나누어 귀속시켰다.
아울러 늘 순찰 부대를 보내 이들 집안을 일부러 약탈하는 것처럼 꾸며 이들이 진에 귀순할 뜻이 없음을 보이게 하여 호인의 의심과 박해를 피하도록 해주었다.
이렇게 하여 조적은 백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은혜를 입은 호병의 가족들은 곧 그의 눈과 귀가 되어 호인 쪽에 무슨 특별한 동향이나 정보가 있으면 즉시 조적에게 보고했다.
조적이 많은 지방을 공격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런 ‘향간’들이 제공해준 정보 덕이었다. 그들이 아주 작은 공이라도 세우면 조적은 즉각 상을 주었는데, 상을 줄 때 단 하루를 넘기는 법이 없었다.
303년, 진의 개주(蓋州) 자사(刺史) 나상(羅尙)은 그의 부장 외백을 보내 유량민을 모아 봉기한 봉기군의 수령 이웅(李雄)을 비성(사천성 비성)에서 공격하게 했다.
이웅은 나상과 같은 고향인 무도(武都) 사람 박태(朴泰)를 찾아내서 피가 나도록 채찍질을 한 다음, 나상이 성을 공격하면 자기가 내응 해서 불을 피워 신호를 보내겠노라며 나상을 유인하도록 보냈다.
나상은 박태의 이 말을 진짜로 믿고 정예병을 모두 동원해 양양(?陽)에서 박태를 따라 이웅을 공격했다. 박태는 기다렸다는 듯이 성안에서 긴 사다리를 밖으로 내려놓고는 불을 피웠다.
불길을 본 외백의 병사들은 다투어 사다리를 타고 성 위로 올라갔고, 박태는 밧줄을 이용해 나상의 군사 백여 명을 성으로 끌어올려 모조리 죽여 버렸다. 여기에 미리부터 매복해 있던 이웅의 부하 장군인 이양의 군사들이 뛰쳐나와 마구 공격해서 외백을 사로잡았다.
이웃한 국가의 국경 지역에 사는 민중 사이에는 공통된 민족 습관이 존재하고 복잡한 교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경계선을 분명히 가를 수 없다. 일단 양국 관계가 깨어지고 군사 충돌이 일어나면 ‘향간’은 가장 유용한 정보 수단이 된다.
‘향간’은 비교적 간단하고 낮은 차원의 간첩 계략으로서 그것을 통하면 그저 일반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뿐이다. 또 상대에게 발각당하기 쉬워 오히려 적이 ‘계략을 파악하여 계략으로 맞선다’는 ‘장계취계(將計就計)’의 책략으로 함정을 파놓고 아군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따라서 ‘향간’을 운용할 때는 신중하고 현명하게 살펴야 한다.
적의 측근을 이용한 간첩술(宦間)
‘환간’이란 환관(내시) 및 측근들을 통해 간첩 활동을 벌리는 것이다.
명나라 말기 후금(後金)은 요동을 공격했다. 명나라 군대가 계속 패하자, 조정에서는 원숭환(袁崇煥)에게 요동의 군대를 맡겼다. 원숭환은 지략과 담력이 뛰어나고 병법에도 정통할 뿐 아니라 변경의 정세에 대해서도 밝은 명장이었다. 원숭환이 작전을 지휘하기 시작하면서 금군의 진공은 주춤해졌다. 그러자 후금은 간첩 활동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조정의 환관들을 매수하여 원숭환이 적과 내통하여 성 아래에서 동맹을 체결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했다. 또 후금은 원숭환과 함께 공격하기로 밀약을 맺었다는 것을 날조하고, 이것을 잡혀온 명의 환관에게 넌지시 알린 다음 그를 놓아주었다. 경성으로 돌아간 환관은 명나라 의종(毅宗)에게 이 유언비어를 보고했다. 의종은 이 말을 의심해보지도 않고 원숭환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렸다. 원숭환의 전임자였던 웅정필(熊廷弼)과 손승종(孫承宗)도 지략이 뛰어난 장수들이었지만, 후금에게 매수당한 환관과 그 일당의 모함으로 죽거나 자리에서 쫓겨났다. 원숭환이 죽은 후 명에는 더 이상 적과 대항할 수 있는 유능한 장수가 없어졌다. 이것은 명이 멸망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