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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재판
  • 호남매일
  • 등록 2023-07-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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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식 시인·작사가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선생님, 00초등학교 제자 정00입니다. 선생님을 꼭 찾아뵐 일이 있습니다.”


자그마치 사십오 년 전 인연의 끈을 다시 당겨주는 전화였다.


이제, 칠학년 사반 턱걸이를 했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랴. 가슴 저편에서부터 파도가 일렁여 온다. 창문을 열어젖뜨리고 청소를 한 후 마음도 차분히 정돈을 하였다.


두 시간여 달려와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고 두 손을 잡기가 바쁘게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다.


“변소청소 잘못했다고 회초리 다섯 대 맞았어요.”


“그래! 응, 그랬었지.”


우리는 서로를 당겨 안았다. 그 날을 가슴에 품고 “많이 아팠지? 미안하네.”


나는 그 때 일을 어제같이 기억하고 있다. 누구보다 맑고 밝게 그리고 흩음 없던 그가 어느 날 친구들의 꼬드김으로 청소를 소홀히 한 것이다. 지나칠 수 있는 일이지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서 회초리를 들었다. 보다 아름다운 그의 앞날을 기대하면서.


따끔했을 것이다. 그날의 아픔, 그 무섭던 회초리는 끈끈한 접착제가 되어 우리를 더욱 단단한 인연으로 환생시켜준 것이리라. 한 번 더 힘껏 끌어안았다.


내 품을 떠난 후 그는 놀라운 거목이 되어 내 앞에 우뚝 나타났다. 내려 보았던 그를 올려 보려니 고개 젖힘이 힘들다.


나를 대신하여 그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 한 번 손을 당겼다. 내 속으로 난 자식이 아니라지만 어찌 그만 못하랴? 성경에도 기록 됐듯이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비의 마음도 이랬으리라.


그는 뭉뚝 잘려나간 숱한 세월동안 깊고 높은 삶의 계곡을 무수히 넘어왔단다. 그리고 다시금 새 길을 자랑스럽게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업인으로서 삶도 중요하지만 글로벌시대에 태어난 자로 국가간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교역할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랑으로 함께 사는 즐거움을 구현해보겠다는 당찬 꿈이 그의 눈에서 빛난다.


그간 십여 년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베트남, 중국, 몽골 등과의 경제적 협력체계의 구축과 교류는 물론 문화예술교류에도 힘써 왔단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교류하므로 삶의 질을 높이자는 대단한 발상이다. 그는 이번 행사의 주무자라고 했다. 뒤 끝에는 관광의 기회도 있으니 꼭 모시고 싶단다.


며칠 후 하늘을 가르고 날라 마침내 카트만두예술회관에 도착했다. 현지 예술인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행사장에 입장하자 잘 꾸며진 무대와 단상이 화려하게 보였다.


이어서 네팔총리와 정부 각 부처 장관은 물론 단체장 그리고 한국대사를 비롯하여 양국의 문화예술 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부 환영행사를 마쳤다.


곧이어 2부 문화행사가 이어졌다. 갤러리에는 양국 화가들의 미술작품들이 정연하게 전시되어있고 안에서는 두 나라의 고유민속예술이 다채롭게 공연 되었다. 순서에 따라 내게도 작은 역할이 맡겨졌다.


은퇴 후 등단하여 몇 편의 시집을 내고 시낭송도 익힌 터에 자작시 한 편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나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다음 나오실 분은 원로 시조시인으로 제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십니다. 변소청소 잘못했다고 종아리 다섯 대 맞았습니다.”


장내는 일순간 폭소가 쏟아졌다. 천정이 무너질 듯 박수를 쳐댄다. 꿈에도 생각지 않은 초대에 꿈에도 생각지 않은 소개말이 아닌가?.


‘아니 이런 소개가 어디 있담? 우세시키려 작정을 했군?’


‘이것은 분명 국제적인 망신이다.’ 허나 순간, 그 소개가 그토록 고맙고 감사함은 어찜인가? 황홀한 감정을 차분히 다스리며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다했다.


세상에는 선생님이 많다고 하나 어찌 이런 기쁨을 모두 다 누리랴? 그에게 다시 한 번 감사했다. 그리고 이런 만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3부는 분과별로 세미나가 있은 후 만찬이 시작되었다. 입을 모아 우리의 깊은 인연에 대하여 과분한 칭찬을 마구 부어주신다.


그때, 내 진즉 좀 더 지혜로웠다면, 좀 더 좋은 가르침을 주었더라면, 좀 더 어루만져주었더라면 하는 자성과 함께 자책의 회초리가 나를 힘껏 내려친다.


물보다 진한 눈물이 울컥 솟아오른다. 겨우 참으며 거저 받은 칭송의 버거움에 답하기 위하여 ‘한 잔을 쏘겠다하니 우레 같은 박수가 폭탄처럼 터져 나온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사람아, 내가 열 번 감사하지. 그렇다고 인민재판에 붙이는가?”


“재밌잖아요?”


“그래! 고맙네. 고맙네.”


오늘따라 그때처럼 파란 하늘이 카트만두 창공에 훤히 펼쳐 보인다. 운동장에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 보이고.


한 아이가 내게 숨차게 달려온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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